지난 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 있는 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 시스코 본사 ‘빌딩20’의 한 회의실. 홀로렌즈 헤드셋(증강현실 기기)을 쓰고 초점을 맞추자 다른 회의실에 있는 엔지니어가 눈앞에 선명하게 나타났다. 홀로그램 화면 속에서 그가 집어든 모형 자동차는 실제 눈앞에 있는 듯 좌우, 위아래 면이 입체적으로 드러났다. 자동차 설계 도면을 띄우니 3차원(3D) 설계도를 자유자재로 돌리면서 생생하게 세부 사항을 살펴볼 수 있었다. SF영화 ‘스타워즈’나 ‘스타트렉’ 속 한 장면이 현실로 구현된 것이다.

생생한 3D 영상 보며 협업

그래픽=전희성 기자
그래픽=전희성 기자
디지털 대전환(DX)은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마치 한 공간에 있는 것처럼 일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기업들은 세계 어디에 있든 직원들이 함께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하이브리드 워크(재택+사무실 근무)가 일상화하면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협업툴 기술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포천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세계 협업툴 소프트웨어 시장은 2021년 171억달러(약 22조원)에서 2028년 408억달러(약 53조원)로 연평균 13.2% 성장할 전망이다.

협업툴 분야 선두 주자인 시스코는 ‘웹엑스’라는 브랜드로 협업을 위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고도화하며 사무용 DX 시장을 노리고 있다. 그중 ‘웹엑스 홀로그램’은 기존 2차원(2D)에서 이뤄지던 협업을 3D 수준으로 끌어올린 최신 기술이다. 양방향으로 3D 홀로그램을 활용한 협업 솔루션을 내놓은 것은 시스코가 최초이자 유일하다.

10여 개 카메라 앞에 놓인 제품은 증강현실(AR)을 지원하는 헤드셋을 착용한 동료들의 눈앞에 3D로 생생하게 구현된다. 모하메드 하디 시스코 웹엑스 엔지니어는 “기존 화상회의에서는 실제 3D 제품을 2D 화면에 구현해야 하므로 상세한 모습을 100% 확인하기 어려웠다”며 “이에 비해 홀로그램을 활용하면 실제 모습과 거의 흡사한 3D로 볼 수 있어 시제품의 정확도 등을 물리적 공간을 뛰어넘어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품 설계도 등을 홀로그램으로 눈앞에 띄워놓고 빠르고 정확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소매업, 제조업, 의료 등 분야에서 실제 물건을 사용해야 하는 교육 훈련이나 제품 디자인 작업에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다.

세계 최고 권위의 레이싱대회인 포뮬러원(F1) 명문 팀인 맥라렌 레이싱팀은 웹엑스 홀로그램을 이용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팀원들이 가상공간에 모여 원격으로 작업하고 있다. 설계팀이 차량의 디자인을 변경하거나 부품을 업그레이드할 때 홀로그램으로 구현한 3D 영상을 제조팀에 보여주면서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다. 에드워드 그린 맥라렌 기술책임자는 “현재는 설계와 생산 쪽에서만 사용하고 있지만 향후 트랙에서도 직접 홀로그램 기술을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우주서도 얼굴 보며 대화

DX 기술은 우주 공간으로까지 확장됐다. 지난달 25일간의 달 궤도 비행을 마치고 지구로 귀환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아르테미스 1호’ 우주선 ‘오리온’에는 화상회의 협업툴이 장착됐다.

우주선을 제작한 록히드마틴과 아마존 그리고 시스코는 협업을 통해 아마존의 음성비서 서비스인 알렉사와 시스코의 협업툴인 웹엑스를 결합한 맞춤형 시스템 ‘칼리스토’를 우주선 오리온에 적용했다. 음성과 영상 협업 기술을 활용해 우주비행사가 우주선의 비행 상태와 원격 측정 데이터를 체크하면서 우주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

이 같은 공간을 뛰어넘은 최신 기술은 어디에 있든지 끊김 없이 유연하게 함께 일할 수 있는 협업툴 기술에 기반한다. 시스코 웹엑스는 인공지능(AI) 기능을 활용해 화상회의 시 배경 소음을 제거하고 주변에서 이뤄지는 대화 가운데 내 목소리만 상대방에게 들리게 하는 기술을 구현했다. 지능형 카메라를 통해 한 화면에 잡히는 여러 사람을 개별적인 화면으로 나눠 보여주고 있으며 100개 이상의 언어로 실시간 번역한 자막을 제공하는 기능도 제공한다.

협업 플랫폼의 또 다른 근간은 클라우드다. 작업자들이 클라우드에 각각의 최신 데이터와 작업 결과를 올려 공유하면서 바로 수정도 가능하게 해 작업 효율성을 향상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 속편인 ‘링즈 오브 파워’를 제작한 아마존 스튜디오는 이 과정에서 세계 20개 특수효과 업체에서 1만 장의 특수효과 사진을 제작했다. 20여 개 업체에서 보내오는 작품을 수정하고 보완하는 복잡한 작업을 가능하게 한 것은 클라우드 서비스였다.

오토캐드로 잘 알려진 오토데스크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세계 곳곳에 흩어진 인력들이 클라우드에 작업물을 올리면 편집자와 경영진이 이를 보완하고 실시간으로 편집한 뒤 영상으로 구현했다. 스티브 블룸 오토데스크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산업 전반에 걸쳐 이제 위치의 중요성이 많이 줄었다”며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자유롭게 작업하는 기업의 생산성이 더 높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강조했다.

새너제이=서기열 특파원 philos@hankyung.com